오늘은 뭘 입고 가지, 날씨도 따뜻해졌으니 가볍게 반팔의 그레이 티셔츠,
그냥 깔끔하게 화이트 셔츠를 입을까, 바지는 어제 입었던 청바지를 한번 더 입을까, 그리고.
그냥 깔끔하게 화이트 셔츠를 입을까, 바지는 어제 입었던 청바지를 한번 더 입을까, 그리고.
Shirts, pants and belt
매일 아침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고민거리들이다.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고민을 한다. 나의 선택을 기다리는 몇 장의 티셔츠와 셔츠, 나란히 줄지어 걸려있는 바지들. 길지는 않은 시간 동안 이상형 월드컵과 같은 나름 치열한 경쟁 끝에 우승자들이 결정된다. 이제 남은 과정은 꽤 순조롭다. 특별한 날 (상견례가 있다거나 면접을 보러 간다거나)이 아니라면 벨트는 대게 부전승이기 때문이다. 옷장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다른 옷들과는 달리 벨트는 옷장에서 찾기 보다 어제 입었던 바지에서 찾는 것이 자연스럽다. 큼지막한 브랜드의 로고 대신 심플한 형태의 브라스(황동)로 만들어진 벨트의 버클은 시간이 흐른만큼 멋스러워졌고 처음 가죽을 만졌을 때의 빳빳함은 사라졌지만 허리에 맞게 적당히 늘어난 가죽은 어느새 친근해졌다. 세번째 구멍이 맞을까 네번째 구멍이 맞을까 방황하던 버클의 고리도 이제는 자연스레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그리고는 나의 일상 속에서 묵묵히 제 역할에 충실하다. 겉보기에 그저 낡고 오래된 벨트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이러한 모습이 클래식하다.
어제도 존재하고 오늘도 존재하고 내일도 존재하는
어떠한 단어이든 ‘클래식한’ 이라는 형용사가 붙는 순간 그것은 왠지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나무 향이 날 것만 같은 것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고급(高級)스러워지고 수십년의 역사성과 같은 것이 부여된다. 하지만 클래식이라는 것이 곧 오래되고 고급스러운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사회적 흐름과 변화를 겪으면서 다듬어지고 여러 사람들의 시각을 거치면서 불필요한 것들이 사라진 본질적인 것들로 정리된 가치와 같은 것이 클래식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오래되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꾸준히 인정받고 회자되는 것이다. 어제도 존재했고 오늘도 존재하고 내일도 존재할 것, 그것이 클래식이다.
벨트의 조건
벨트의 역할은 심플하다. 출근시간에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가다 바지가 흘러내려 엉거주춤하느라 버스를 놓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회의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바지가 흘러내려 얼굴이 빨개지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특히 헐렁한 원피스에 가까운 옷을 입었던 과거에 허리와 골반의 곡선이 뚜렷했던 여성과 달리 그 경계가 모호하고 일직선에 가까운 남성들에게 벨트는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그 역할이 단순하다고 하여 벨트를 디자인하는 것 역시 단순한 것은 아니다. 평소 우리의 몸에 걸쳐 있는 것들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것은 벨트이다. 어제 입었던 셔츠는 세탁기에 들어가 있을테지만 어제 찼던 벨트는 대게 오늘도 차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데일리 코디네이션에 민감한 패셔니스타가 아니라면) 물론 어떤 디자인이던 쉬운 것이 없겠지만 벨트의 경우 매일 사용하는 제품일 뿐더러 몸에 직접적으로 착용하는 제품이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그렇기에 외적으로 특별한 개성을 추구하기보다 그 자체의 본질적 기능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벨트이다. 오래사용해도 끄떡없을 튼튼한 가죽과 그 가죽을 잡아줄 단단한 버클, 이것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기보다 작지만 하나의 목소리를 낼 것. 이것이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벨트의 모습이다.
LEATHER & SOLID BRASS
TRVR의 LEATHER & SOLID BRASS BELT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소재에 조명하는 제품이다. 벨트에 사용된 가죽은 이탈리안 베지터블 레더가 사용되었고, 버클은 TRVR에서 자체생산하고 다른 금속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브라스(황동)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벨트 자체의 디자인에 주목하기보다 사용자가 벨트를 착용하였을 때 어떠한 모습일지에 중점을 두고 디자인한다. 모든 벨트에는 5개 이상의 버클 고리 구멍이 뚫려있다. 이렇게 여러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이유는 물론 사용자가 자신의 허리에 맞는 구멍에 버클 고리를 끼울 수 있게끔 디자인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벨트에 뚫려있는 모든 구멍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두 개 정도의 구멍만 있으면 충분하다. 평소에 사용하는 것과 외식을 했을 때 필요한 구멍. 사용자가 벨트를 착용하였을 때 가장 이상적으로 보기 좋은 모습은 벨트의 세번째 구멍에 버클 고리를 끼웠을 때이다. 이를 위해 TRVR의 모든 벨트는 사용자의 허리 사이즈에 맞도록 맞춤 주문제작 형태로 제작된다.
TRVR이 클래식한 브랜드는 아니다. 다만 우리는 제품이 지니고 있는 본질이 무엇인지, 불필요한 요소는 어떤 것이 남아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하여 제품을 디자인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들고, 특별한 개성을 띄기 보다 사용자의 곁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제품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러한 TRVR의 모습이 사용자에게 ‘클래식한’ 모습으로 느껴지길 바란다.
클래식이란 것은 어제도 존재했고 오늘도 존재하며 내일도 존재하여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항상 함께 하는 것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