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昨今)의 시대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코로나19 시대에 아티스트, 작가로서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있나.
한 미술 평론가는 앞으로의 예술 작품은 사치가 아닌 위로와 치유가 되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지금은 전쟁의 시대도 아니고, 분명 자원이든 환경이든 과거보다 풍족한데 젊은이들은 꿈이 없거나 직장이 없고, 육아는 막막하고, 주택난 때문에 힘든 시대에요. 코로나19로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이런 시대에 삶과 죽음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는 받아들이기 어렵죠. 단 한 조각의 빛, 희망의 메세지가 중요한 시대구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지고 치유가 되는 그림을 그리고자 합니다.
비단 시대 상황과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작품의 첫 번째 관객이니까요. 저 스스로조차 그림을 그리면서도, 첫 번째 관객으로서도 제 작품을 통해 기분이 좋아지고 치유받기를 원합니다. 힘들게 그린 작품은 관객들도 안 좋은 에너지를 느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저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가장 즐기는 일이기도 하고요. 가끔 주변에서 몸이 몇 개냐, 어떻게 그렇게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냐고 물어보는데 12시간 넘게 그림을 그리면서도 지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개인전, 여러 브랜드·아티스트와의 협업 등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하는데 어떤 작업이 가장 인상적 인가.
가장 최근에 한 작업이요. 같은 질문을 일 년 후에 받아도 가장 최근에 한 작업이라고 대답할 거에요. 저 스스로에게도, 관객에게도 최근 작업이 가장 멋있고 새롭고 인상적이기를 바랍니다. 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니까요.
전시든 협업이든 일의 형태와 성격에 관계없이 작업의 여정 속에서 영감을 얻고 다음 작업에서는 확실히 더 성장하고 나아갑니다. 개인전을 통해 성찰을 얻고, 협업으로 만들어낸 결과물들이 소비되고 활용되는 것을 보면서 더 나아가는 작업에 대한 메세지나 아이디어를 얻거든요.
내 안의 것들이 발견되고, 작업의 여정 속에서 나아가집니다. 그래서 저 자신조차도 앞으로의 작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르겠어요. 그런 점이 재미있기도 하고요.
나난의 첫 번째 개인전 The Pictorial Life <그림 같은 삶> 은 마치 축제와도 같았다. 두 번째 개인전이 기대된다.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오면서 그룹전도 하고 협업도 많이 했는데 개인전은 작년이 처음이었어요. 성장과 발전을 갈구하던 시기에 오랜 친구 사이이다로부터 개인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너무 힘든 일이지만 그것을 통해서만 닿을 수 있는 성장과 성찰이 있다고. 그 얘기를 듣고 개인전을 준비했어요. 정말로 힘들더라고요. 준비하는 내내 뼈마디가 쑤시고, 두통과 이명에 시달리고, 가위에 눌리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마도 순수함의 정수를 뽑아내는 일이기 때문이었을 거에요.
그리고 두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는 지금, 첫 번째 개인전 전시물을 보면 어리게 느껴집니다. 1년 사이에 생각이 나아가고 숙성이 된 거죠.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저의 옥수수(진주 귀걸이를 한 옥수수, 2019)가 한 번 더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발트 3국 최대 인터넷 언론 포털사이트와 인터뷰를 했는데 왜 옥수수인지 묻더라고요. 흥미로웠어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었거든요. 지인이 옥수수를 보내주었길래, 당연히 저는 모든 일상이 그림과 함께 하는 삶이니까 늘 그래왔듯이 그림으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 거였어요.
제 삶은 그림을 빼면 할 얘기가 없어요. 제 삶에는 늘 그림이 있고, 그림 자체로 삶이 연결 되거든요.
붓을 지니든, 종이를 몸에 걸치든, 창문을 캔버스 삼든 제 여정에는 늘 그림이 있고, 그렇게 모든 오브젝트를 작품화하려고 노력하는 그림 같은 삶이 옥수수로 투영된 거에요. 누구나 다 보편적으로, 대중적으로 먹을 수 있는 옥수수요.
옥수수가 전 세계 아트씬의 사랑을 받는 것을 보면서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새로운 것은 뭘까라고 했을 때 결국 저의 고유성을 보여주는 것이더라고요. 그것은 곧 한국적인 것이고요.
두 번째 전시는 그런 성격이 될 거에요. 한국의 민화 속에 꽃다발의 형태가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꽃의 구도나 배치, 질감, 양감을 중요시하는데 민화에서는 꽃의 의미에 집중해요. 꽃과 곤충, 꽃과 동물 이런 식으로요. 그 의미가 너무 멋있어요. 현재를 살아가는 아티스트로서 제 스타일로 민화를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품에 담기길 바라는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선보이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렵게 느껴져요. 그림을 그릴 때는 항상 가족이나 친구들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상상을 하며 작업을 합니다.
실제로 대다수 작품들은 가까운 사람들과의 생활에서 비롯됩니다. 친구들 생일에 왕관, 목걸이 같은 걸 만들어주다가 친구가 웨딩 촬영을 한다고 해서 부케를 만들어 준 것이 지금의 롱롱타임플라워의 시작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 작품에는 주로 감사나 축하, 위로의 메세지가 담겨 있고, 관객들이 작품을 감상할 때 그런 메시지들이 시들지 않고 오래도록 간직되었으면 합니다.
티알브이알의 많은 제품을 가지고 있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타임리스에 대한 고민이 느껴져 좋아합니다. 트렌디와는 거리가 있는 카테고리라는 것이 마음에 들어요.
트렌디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할머니가 돼서도 쓸 수 있는 브랜드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많은 제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TRVR의 가방, 파우치, 모자는 제 작품과 같이 삶 속에 묻어나는 물건들입니다. 쓰면 쓸수록 생활감이 더해져 지루하지 않고 손때와 애정이 느껴져 가치를 더합니다.
나 좀 봐달라는 식으로 튀지 않는 점도 좋아합니다. 빨리 튀어서 빨리 소비되고 다음 것을 만들어야 되는 시대에 묵묵히 곁을 지키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놀랍기도 합니다. 그 가치를 읽는 성숙한 분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나난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처음 저를 소개한 것처럼, 그림을 통해 사랑과 우정을 나눈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면서 사랑과 우정을 느끼기를 바랍니다.